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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책 표지 대표이미지

책을 읽다 보면, 분량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의 ‘맡겨진 소녀’가 바로 그런 책입니다.

100페이지 남짓한 소설이지만,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삶과 사랑, 돌봄의 이야기는 독자의 내면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오래전 제 유년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10살 무렵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부모와는 또 다른 방식의 따뜻함을 경험했는데요.

그 기억이 ‘맡겨진 소녀’의 소녀가 느낀 정서와 겹쳐져, 단순한 독서 경험이 아니라 개인적인 회상과 위로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맡겨진 한 소녀

소설은 한 소녀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동생이 많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여름방학 동안 친척 집에 잠시 맡겨집니다.

부모에게서 특별한 애정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먹는 만큼 일하라”는 아버지의 무심한 말과 함께 새로운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소녀는 킨셀라 아주머니와 션 아저씨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들의 배려와 따뜻한 관심 속에서 점차 마음을 열어가죠.

작은 행동들, 예를 들면 깨끗한 옷을 사주고, 밥을 챙겨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소한 돌봄이 소녀에게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부 또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어린 아들을 잃은 상실의 기억이 있었죠.

그런 배경 속에서 두 사람은 소녀를 그저 손님이 아니라 가족처럼 대하며, 부족했던 사랑을 나눠줍니다.

 

 

작가 : 클레어 키건

이 작품의 저자 클레어 키건은 1968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소설가입니다.

그녀는 아일랜드 문학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작가인데요.

단편과 중편을 통해 인간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너무 늦은 시간’, ‘이처럼 사소한 것들’, ‘푸른 들판을 걷다’ 등이 있습니다.

특히 ‘맡겨진 소녀’는 출간 이후 큰 호평을 받았고, 2022년에는 영화 <말없는 소녀(The Quiet Girl)>로 각색되어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오르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습니다.

클레어 키건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특징이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오히려 독자가 여백을 채우며 스스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듭니다.

 

맡겨진 소녀 원작 Quiet Girl 영화 포스터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겹쳐지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던 시절, 저는 10살 무렵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분들은 말수가 적으셨지만, 따뜻한 밥을 챙겨주시고, 밤마다 등을 토닥여 주시던 손길로 제 마음을 채워주셨습니다.

‘맡겨진 소녀’ 속 주인공이 처음으로 존중받고, 따뜻하게 보살핌을 받으며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돌봄은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작은 배려가 한 아이의 마음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크기가 아니라 깊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사랑의 크기보다 깊이입니다.

부모라고 해서 반드시 자식을 더 깊이 사랑하는 것은 아니며, 혈연이 아니더라도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은 충분히 아이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소녀는 비밀을 감추고 살아가는 집이 아니라, 투명하게 드러내며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새로운 집에서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낍니다.

깨끗한 물을 마시며 “여기가 내 집이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그녀가 비로소 사랑받는다는 감각을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여름방학은 끝나고, 소녀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가 친아버지가 아닌 션 아저씨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며 “아빠”라고 부르는 대목은 이 책의 감정을 압축한 장면입니다.

그 순간, 독자는 진짜 가족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됩니다.

 

 

맡겨진 소녀를 읽고 나서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 ‘돌봄’을 통해 자신이 존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맡겨진 소녀’는 바로 그 원초적인 필요와 결핍을 다루며, 잔잔하지만 강력한 울림을 전해줍니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마치 긴 대하소설을 읽은 듯한 깊은 성찰을 남깁니다.

가족, 사랑, 돌봄, 상실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기에 세대를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처럼 조부모의 손에서 자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 깊이 마음에 스며드는 작품일 것입니다.

 

‘맡겨진 소녀’는 단순히 ‘한 소녀의 여름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며 반드시 필요한 사랑과 돌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잊고 있던 제 어린 시절의 기억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진정한 보살핌이 어떤 힘을 가지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을 남기는 이 작품을, 많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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