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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책 표지 사진

2016년에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어온 일상적인 차별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이 책은 발간 직후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불과 2년 만에 100만 부 판매를 돌파했습니다.

이후 2019년에는 배우 정유미, 공유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문학적 화제성과 사회적 파급력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출간된 지 한참 지난 뒤, 우연히 당근마켓에서 구입해 읽게 되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논란과 담론이 지나간 작품이지만, 오히려 시간이 흐른 지금 읽으니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페미니즘의 도화선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하지 않아서 더 특별한 주인공

대부분의 소설은 특별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책 속의 김지영 씨는 전혀 특별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사회에 나와 평범하게 일하다 결혼 후 육아에 전념하게 되는 보통의 여성입니다.

그녀의 어머니, 그녀의 딸 또한 특별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독자는 놀라게 됩니다.

이 소설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현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로서 저 또한 읽는 내내 제 어머니, 제 여동생, 그리고 제 주변 여성 지인들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이 작품은 거창한 서사 대신, 그동안 한국 사회가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던 “평범한 여성의 일상”을 세밀하게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김지영 씨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어머니이자 누나이고, 동료이자 친구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책 속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갓난아이를 키우던 김지영 씨가 잠시 짬을 내어 공원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대목입니다.

평일 오후 공원 벤치에서 단지 커피를 마셨다는 이유로 그녀는 ‘맘충’이라는 비하를 듣습니다.

저 역시 직장 생활 중 카페에서 여성 고객들을 바라보며 무심코 ‘팔자 좋다’라는 말을 주고받았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가볍게 던진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책은 이런 작은 순간 속에 숨어 있는 차별과 편견을 드러냅니다.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씌운 억압의 굴레를 보여줍니다.

 

 

소설과 현실을 잇는 장치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허구의 이야기를 사실적 근거와 함께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소설 속 사건들에 실제 신문 기사나 통계 자료를 덧붙여, 독자가 “이건 단순한 픽션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듭니다.

또한 서사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남성 정신과 의사의 시선은, 이 이야기가 단순히 여성의 주장이 아닌 사회 전체가 직면해야 할 문제임을 암시합니다.

독자는 그 시선을 따라가며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됩니다.

 

 

작가 조남주

’82년생 김지영’의 저자 조남주 작가는 소설가로 활동하기 전, 방송사 PD였습니다.

MBC <PD수첩>과 <불만제로> 제작진으로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작품 곳곳에 사회 고발적인 시선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그녀는 이후에도 사회 구조 속에서 소외되거나 억압받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문학성과 사회적 메시지 사이

솔직히 말해 ’82년생 김지영’은 문학적 완성도만 놓고 보면 조금 아쉽다는 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인물의 내면을 깊숙이 탐구하거나 서사의 복잡한 갈등 구조를 치밀하게 풀어내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힘은 문학의 사회적 기능에 있습니다.

여성의 일상적 차별이라는, 오랫동안 무시되던 문제를 공론장 위로 끌어올린 것 자체가 큰 성과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부분이야말로 지금 시대 문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 여성의 이야기

소설에는 김지영 씨뿐만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 오미숙 씨, 그리고 그녀의 딸 정지원까지 세 세대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세대를 거듭해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과 억압은 여전히 잔존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김지영 씨 어머니의 대사, 그리고 임신 중인 김지영 씨가 직장 내에서 느끼는 딜레마 등은 현실과 너무 닮아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남자라서 기회가 더 많았던 것 같다”라는 제 직장 생활 경험과도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남성의 시각에서 본 불평등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이 현실이라면, 남성들이 겪는 불합리한 의무 역시 존재하지 않을까?

예컨대 군 복무 의무, 지하철 여성 전용칸 같은 문제들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이 책은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성별을 떠난 “공정함”과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불평등은 남성과 여성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82년생 김지영은 거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독자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며 살고 있는가?”

더 나은 사회는 결국 서로에게 무례하지 않는 태도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합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이 책을 꼭 “페미니즘 책”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로 받아들일 때,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내 가족, 내 동료, 내 친구에게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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